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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달봉이입니다. 이번 아시안게임 체조 중계를 보다가 ‘저 선수는 몇 살이냐’는 이야기가 나왔다면 아마 이 사람 때문일 겁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옥사나 추소비티나, 1975년생으로 올해 51세입니다. 9월 24일 나고야에서 열린 여자 도마 결선에서 5위를 했습니다.
이번 대회 성적과 30년 넘는 선수 경력, 아들을 위해 뛰었던 독일 시절, 그리고 아직 놓지 않은 다음 목표까지 차례로 정리했습니다.
②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도마 예선 4위 → 결선 5위
③ 올림픽 8회 연속 출전(1992~2020), 여자 체조 선수 최다 기록
④ 아시안게임은 1994년부터 7번째, 메달 8개
⑤ 다음 목표는 2028 LA 올림픽, 출전하면 53세
옥사나 추소비티나는 누구인가

옥사나 추소비티나는 1975년 6월 19일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태어난 기계체조 선수입니다. 키는 153cm이고, 주종목은 도마입니다.
그의 경력은 국적 이력만 봐도 길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옛 소련 시절에 시작해 나라가 바뀔 때마다 다른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 기간 | 대표 |
|---|---|
| 1990~1991 | 소련 |
| 1992 | 독립국가연합(옛 소련 국가 연합팀) |
| 1993~2005 | 우즈베키스탄 |
| 2006~2012 | 독일 |
| 2013~ | 우즈베키스탄 |
체조, 특히 여자 체조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 전성기로 꼽히는 종목입니다. 그런 종목에서 50세를 넘겨 국제대회 결선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되는 이유입니다.
세계선수권에서는 2003년 도마 금메달을 땄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도 수십 년에 걸쳐 메달을 모았습니다. 한국 팬들에게는 여홍철·여서정 부녀와 두 세대에 걸쳐 같은 무대에 선 선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2026 나고야 아시안게임 도마 결선 결과
이번 대회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입니다. 추소비티나는 9월 22일 여자 도마 예선에서 평균 13.266점으로 전체 4위를 해 8명이 겨루는 결선에 올랐습니다. 뉴스1에 따르면 3위와의 차이는 0.167점이었습니다.
결선은 9월 24일 나고야 종합체육관 레인보우홀에서 열렸습니다. 두 차례 도마 연기를 마친 그는 13.199점으로 5위를 했습니다. 메달에는 닿지 못했지만 연기가 끝나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고 한겨레는 전했습니다.
금메달은 한국의 여서정이 14.483점으로 가져갔습니다. 은메달은 북한 안창옥(13.666점)이었습니다.
여서정과 추소비티나의 인연도 눈길을 끕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추소비티나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여서정의 아버지 여홍철과 함께 출전했던 선수입니다. 아버지와 딸이 30여 년 차이를 두고 같은 선수와 한 대회에 선 셈입니다.
여서정은 경기 뒤 ‘시니어 데뷔 이후 계속 함께 국제대회에 나선 선수’라며 ‘우리 감독님과 나이가 같은데도 계속 뛰고 있어 항상 존경스럽고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습니다.
올림픽 8회 연속 출전

추소비티나가 처음 올림픽 무대에 선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입니다. 열일곱 살이었고, 옛 소련 국가들이 모인 독립국가연합 단일팀의 일원으로 단체전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 뒤 1996 애틀랜타부터 2020 도쿄 대회(2021년 개최)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바르셀로나를 포함해 8회 연속 출전으로, 여자 체조 선수 최다 기록입니다.
개인전 메달은 늦게 찾아왔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독일 대표로 도마 은메달을 땄는데, 서른세 살에 얻은 첫 올림픽 개인전 메달이었습니다.
도쿄 올림픽에는 마흔여섯 살에 나섰고, 대회 뒤 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번복했습니다.
긴 행진이 처음 끊긴 것은 2024 파리 올림픽입니다. 아홉 번째 올림픽을 준비하던 그는 고국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2024 아시아선수권 직전 공식 훈련에서 마루 연기를 하다 다쳤습니다. 대회 출전을 포기하면서 파리행도 무산됐습니다.
아들 알리셰르와 독일 시절

추소비티나가 오래 뛴 이유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아들 알리셰르입니다.
2002년, 1999년생 아들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추소비티나는 더 나은 치료를 받기 위해 가족과 함께 독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치료비가 문제였습니다. 그해 11월 스페인 스포츠지 아스는 추소비티나가 아들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상금이 걸린 국제대회에 출전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상금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고, 국제 체조계가 모금에 나서 여러 나라에서 도움이 이어졌습니다.
그는 2006년 독일 국적을 얻었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 독일 대표로 나가 은메달을 땄습니다. 같은 해 아들이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추소비티나는 2023년 싱가포르 방송 CNA 인터뷰에서 그때를 돌아보며 ‘금메달 하나도, 두 개도 (아들 회복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도운 세계 체조계에 대한 고마움도 함께 전했습니다.
아들이 회복한 뒤인 2013년, 그는 다시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돌아왔습니다.
아시안게임 32년, 메달 8개

아시안게임 이력도 길습니다. 추소비티나는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 처음 아시안게임에 나섰고, 32년 뒤 다시 일본에서 열린 이번 나고야 대회가 일곱 번째 출전입니다.
역대 아시안게임 메달은 8개입니다. 금메달 2개, 은메달 4개, 동메달 2개로 구성됩니다.
- 2002 부산 — 도마·마루 금메달
- 2014 인천 — 도마 은메달
- 2018 자카르타·팔렘방 — 도마 은메달
두 금메달을 모두 한국 부산에서 땄다는 점이 한국 팬들에게는 반가운 대목입니다. 2002년은 아들이 백혈병 진단을 받은 해이기도 합니다.
이번 대회 예선을 4위로 통과했을 때 국내 언론은 그가 아시안게임 아홉 번째 메달에 도전한다고 전했습니다. 결선 5위로 메달 수는 그대로였지만, 51세에 결선 무대에 선 것 자체가 진기록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51세의 다음 목표, 2028 LA 올림픽
파리 올림픽이 무산된 뒤 선수 생활이 끝날 것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추소비티나는 2025년 국제무대에 돌아왔습니다.
49세이던 2025년 3월 바쿠 월드컵 도마에서 우승했고, 같은 해 6월 50번째 생일을 보낸 직후 타슈켄트 월드챌린지컵에서 은메달을 땄습니다. 올해도 국제대회를 이어 가다 이번 아시안게임 결선까지 올랐습니다.
결선을 마친 그의 눈은 이미 2년 뒤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음 올림픽에 나가는 건 여전히 제 꿈’이라며 ‘오늘 경기를 통해 그 꿈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걸 느꼈다’, ‘한 걸음씩 계속 나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출전권을 따면 쉰세 살에 다시 올림픽에 서게 됩니다.
경기에 나서는 이유도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내 즐거움을 위해 경기에 나온다’, ‘지금은 부상이나 통증도 없기 때문에 매 대회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나이에 대한 질문에는 농담으로 답했습니다. ‘만약 나이에 따라 가산점을 준다면 나는 항상 1등이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내가 원한다면 나이는 한계가 될 수 없다.’ 체조를 한 단어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그가 고른 말은 ‘사랑’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추소비티나는 올해 몇 살인가요?
1975년 6월 19일생이라 2026년 아시안게임 기간에는 만 51세였습니다. 이번 대회 여자 도마 금메달을 딴 여서정과는 20년 넘게 차이가 납니다.
몇 개 나라 대표로 뛰었나요?
소련, 독립국가연합, 우즈베키스탄, 독일 대표로 뛰었고 2013년부터 다시 우즈베키스탄 대표입니다. 우즈베키스탄 대표는 두 번에 나눠 맡았습니다.
왜 독일 국적을 얻었나요?
아들 알리셰르의 백혈병 치료를 위해 2002년 가족과 함께 독일로 옮겼고, 2006년 독일 국적을 얻었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도마 은메달은 독일 대표로 딴 것입니다.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한 적이 있나요?
2003년 세계선수권 도마 금메달이 있습니다. 2025년에는 49세 나이로 바쿠 월드컵 도마에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은퇴 계획은 없나요?
본인은 ‘내가 즐기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도쿄 올림픽 뒤 한 차례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한 적도 있습니다.
마치며
추소비티나의 나고야 아시안게임은 결선 5위로 끝났습니다. 메달은 없었지만, 열일곱 살에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땄던 선수가 쉰한 살에 다시 아시아 정상급 선수들과 같은 결선에 섰습니다. 아들의 치료비를 위해 뛰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즐거움을 위해 뛴다는 그가 2028년 LA에서 어떤 결과를 낼지는 앞으로 2년의 몫입니다.